나는 오늘 많은 사람들께 쓴소리를 들을 각오로
나의 지나온 사생활을 펼쳐 보고자 한다.
나는 집사람과 초등학교 1학년때 같은반 친구였다.
집사람은 3개월 다니다 교직에 계신 아버지를 따라 전학을 갔다.
친구 마나님의 소개로 만났는데 한 눈에 내 동창임을 알았다.
평소 연애 함 제대로 못하고 대학생활을 마감한 나는
이참에 어떻게든 성원성취 해야하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우린 만났다.
들어가기전에 나와 집사람에 대해 언급한다.
본인 :
성격: 불같은 성격이지만 활발하며 대중앞에 잘 나서기좋아함
불의에 굴하지 않는 편(돌맹이는 절대 안던졌음)
음주 : 기분 겁나게 좋으면 쐐주 2병(다리 쪼매 흔들림)
기분 나쁘면 절대 안마심
대인관계: 대단히 우수(남덜이 그래요)
가장노릇: 아래글을 읽고 판단하시길.....
직장에서 : 인턴들은 내 눈치 많이 봄
집사람 :
성격 : 내성적이고 말수가 없음
음주 : 열받으면 캔맥주 4병(안주없이)
마시고 나면 더 열받고 알콜과 잠에 취함
대인관계: 처가식구덜이 그래요.
조서방 이런 처자 만나기 힘들거라구...
(내가 볼땐 ... ㅋㅋㅋ)
가정에서: 만 36개월 동안 딸아이 모유 먹였던 순진무구형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 학창시절에
반성문을 한두번은 써봤을거다.
참으로 오랬만에 난 오늘 반성문을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써야할 이유가 있다.ㅠ-ㅠ
올해로 결혼 10주년째다. 그런데 왠 반성문인가 의아할거다.
그러니까 그때가 95년 낙엽이 나뒹굴며 찬바람이 불어올 때였다.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양가에 인사를 드리고
이제 우리만의 보금자리로 떠나올때 부산행 고속버스안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새댁을 보며
정말 잘해주어야 겠다고 몇번이고 다짐했었다.
친정 어머니를 숨죽여 부르며
흐르는 눈물이 나의 심금을 울렸던거다.
극단적인 이기심이 그 와중에도 머리속에 떠오른다.
나는 절때로 딸을 낳으면 안되겠다는.......
비록 작은 집이었지만 갖출것 다 갖춘 세간 살림은
생활하는데 불편이 없었다.
한달에 한번씩 동문선후배들과 만남의 기회도 있었고,
해운대와 광한리의 바닷가, 다대포의 몰운대,송도해수욕장,
송정해수욕장, 금정산의 범어사, 동래의 식물원등
가볼만한곳은 다 가보았고 어느덧 큰애가 태어났다.
정작 애가 생기니 즐겁고 행복한 시간만은 아닌것 같더라.
"행복 끝 불행 시작"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이제야 그의미를 깨닫기 시작했으니깐!!!
남들은 아이 귀저기 뿐만아니라 분유도 타서 밤잠을 설치고
아빠 노릇한다는데 난 한번도 그렇게 다정하게
대해주지도 않았고 임신했을때
밥상 한번은 고사하고 병원에 한번도 같이 간적이 없었다.
큰 녀석이 덩치가 커서 밖으로 빠져나오질 못해
칼질을 한 후에야 나온 관계로 무척 고생이 많았을텐데....
주위에서 듣기로 애들은 최소한 밤낮이 뒤바껴도
잠은 잘 잔다고한다.
근데 이 녀석은 모유는 안 먹고 소 젖만 달래서
소젖을 먹였더니, 도대체 잠도 없고
잠시 자드래도 삐걱거리는 소리만 들려도
으~앙!! 으~~ 우~~~왕!!!
지네 엄마 괴롭히던 그런 녀석이었는데
나는 모른체 등돌리고 잠만 잔다.
흘러가는 얘기로 남들은 어떻게 하는데 섭섭하단 말을
했지만 또 모른체
먼산 바라보듯 듣고 흘렸던 그 시절이 있었다.
어디 그뿐이랴?
객지에 친한 친구 한명 없는 곳에 아들 녀석만 맡겨놓고
주말이면 어김없이 베낭을 메고 산으로 달려간다.
주말이면 생과부가 되는게 다반사였다.
그래도 그땐 순진해서 궁시렁 거리면서도
밑반찬은 두둑히 싸주었다.
그런 시간이 가면 갈수록 불만의 목소리가 커졌고
그럴땐 난 이렇게 협박한다.
나 오늘 등반하다 사고나서 죽으면
혼자 살아갈수 있어하면 그제서야 잘 다녀오라고
배웅하는 그런 순진한 여자였다.
객지생활하면서 동아리활동을 했기때문에 난 무지 재미있었다.
그 재미뒤에 집사람의 불만이 하늘 높은줄 모르게
올라가고 있었음을 난 뒤 늦게야 알았지만....
언젠가는 이런 일도 있었다.
친구 가족과 함께 도회지로 나가서
바람이라도 쏘이자해놓고 난 또다시
산으로 산으로만 멀어졌었다.
나중에 나의 작전이란걸 알고선 너무도 불쾌해한다.
세상에!
친구에게 처자식들 맡겨놓고 혼자 그렇게 따로 놀고 싶었냐고?
본인은 괜챦다쳐도 가장이 없는 공간에서
애들이 기를 못피고 활발치도
않은 그런 무의미한 시간이 끔직했노라고~
일단 그 시간을 모면하기 위해서 담에 안그런다고 해놓고
그 습성 남주랴!!
한주의 수요일은 또 어떻고?
그날은 산사람들의 모임인데 함 가면 집에서는 함흥차사다.
빨라야 새벽 1시, 보통은 3-4시 되어야 술판이 파한다.
살며시 문따고 들어가면 그때까지 날 포기하지 않고
기다릴줄이야!
차라리 잠이라도 자면 거짓말이라도 할텐데(더 일찍 들어왔다고)
정신이 올곧은 사람같으면 집사람 건강 생각해서
일찍 자라고 염려를 할텐데,
나는 나의 행각을 감추기 위해서 일찍 자라고 말을 한것이다.
난 사람들을 집에 초대하길 좋아한다.
아니 사람들과 덕담을 주고 받길 좋아한지도 모른다.
늦은 밤이라도 손님이 들이 닥쳐도 잔소리 한번없이
객들을 맞아주는 그런 사람이었는데 난 얼마나 치졸한가?
우리 부부처럼 대조적으로 만나기도 힘들것이다.
집사람 최대의 불만은 내가 귀가후에는 말이 없다는 것이다.
평소 모임이나 친구들 만나면 무슨 할말이 많아서
목소리가 재일 크냐는 것이다.
평소 말이 없던 사람이라면 이해하겠는데 집에만 오면
벙어리가 된다는 것이다.
나는 나대로 이유를 댄다. 하루 종일 입만 벌리고 있는 사람이
집에까지 와서 입을 열고 있으면
스트레스 받아서 죽을것이라고..
둘째가 태어나기 며칠전 아시는 분은 알겠지만
암벽등반 도중에 사고가 났다.
고통스런 와중에 떠오르는 얼굴은 집사람이었다.
낼 모레면 몸을 풀텐데 하필이면 이럴때 사고라니...
정말이지 처음으로 집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더라,,,
둘째가 세상에 나오던 날 나는 다리 전체에 깁스를 한채
산모의 고통을 지켜보게 되었는데 주치의와
간호사들이 어쩌다 그런 사고를 당했냐고 한마디씩 거든다.
참으로 부끄럽고 참담한 시간이었다.
몸을 망가뜨려 놨으니 이제 할 말도 없고 취미생활도
점점 활력을 잃어 가고 있는 동안,
어느세 주도권(!)이 뇨자에게 넘어가드라..
어떠한 상황에서 의논을 한답시고 대화를 시도하다보면
주장하는 바가 달라서 끝내는 말다툼으로 이어지고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만 주는 그런
전쟁아닌 전쟁을 하게된다.
집사람에 대한 감사나 장점을 우선하기 보다는
단점만을 찾아서 융단 폭격을 가했으니,
난 정말로 나쁜 남편이었던 것이다.
시집올때 여리디 여린 심성에 어질고
착하기만한 집 사람에게 이젠
정말로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야 겠다.
ㅅ~ㅏ ㄹ~ㅏ~ ㅇ~ㅎ~ㅐ~라고
내 간댕이의 부피를 줄이는 방법을
난 너무 늦게서야 깨우친 것이다.
이 글은 의사인 제 후배가 쓴 반성문 입니다....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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