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라면 한 바가지 떠서 마시고 싶다는 표현을 하고 싶을 만큼
가을 하늘이 참으로 맑다.
아니 높고 아름답다.
이렇게 아름다운 가을날인데 무미건조 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둘째 녀석의 대학 입시 문제가 그렇고 아버님의 건강 문제가 그런 것 같다.
둘째는 대학교 합격하면 되는 일이고 아버님은 나이가 드셨으니
그럴 수도 있다고 위로하면 그만일 텐데
생각이 자꾸 머무는 걸 보면 내 스스로 고민을 만들지는 않나 하고 뒤 돌아보게 된다.
사람 산다는 것이 다 그렇지만 말이다.
어젯밤이다.
저녁 퇴근을 해서 옷을 갈아입는 데 아내의 휴대 전화 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하더니 얼굴이 찡그러지고 휴대전화에서는 울음소리가 흘러 나왔다.
순간 나는 당황했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아내는 손을 위 아래로 흔들며
조용히 하란다.
몇 분간 의 침묵이 흐르고 난후 전화를 끊던 아내가 참 속상 할 일이네 하며
푸념을 건넸다.
무슨 일이냐고 했더니 아는 사람인데 딸이 또 살림을 부셨다네... 라고 했다.
너무나도 황당해서 무슨 말이야 하고 물었더니...
딸이 21살인데 엄마를 때리고 기분 상하면 집안 살림을 다 부셔 놓는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말문이 막혔다.
샤워를 하고 저녁 식사를 하는데 아내는 더 안타까운 소리를 했다.
남편은 이웃집 여자와 눈이 맞아서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동거를 하고 있다고 했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그 여자는 몸의 반쪽을 쓰지 못하는 병을 얻어
거동도 불편한 상태라고 했다.
그렇다면 생활은 어떡게 하는데 라고 했더니
기초 생활비가 조금 나오는데 부족해서 주위 사람들이 조금씩
도움을 줘서 살고 있다고 했다.
어려움을 친정이나 시댁에 말도 해 봤지만 가족의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단다.
딸의 폭력에 대해서 여러 기관의 도움도 받아 봤지만
딸은 변화가 없고 힘이 약한 엄마는 때리면 맞고 욕하면 듣고 살림을 부셔도
이렇다 할 반응을 할 수 없어서 맞지 않으려고 집을 나가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혼자 살면 안돼 ... 하고 물었더니
둘째 딸이 있어서 그렇지도 못한단다.
세상에 ~
뉴스에나 나올 일이 내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반쪽의 몸으로 세상 살기도 힘 들 텐데 가족이라는 사람들이 행하고 있는 행위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남편은 다른 여자와 살려면 집에서 멀리 떨어져서나 살지...
뿐만 아니라 딸이 엄마를 구박 한다는 사실 또한 믿고 싶지 않다.
남편이 병든 아내에게 딸이 병든 엄마에게 그럴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세상 참 요지경이라지만 믿고 싶지 않을 일들도 많은 것 같다.
어젯밤도 그랬지만 오늘 또한 마음이 너무 짠하다.
병든 몸 가족들이 보호하고 위로하고 불편 없도록 해 줘야 할 텐데
남보다도 못한 가족이 되고 말았으니 안타까움이 몹시 크다.
그 몸으로 둘째 딸을 염려하고 있는 엄마의 희생이 그저 애처로울 뿐이다.
뭔가 도움이 될 만한 일이 있다면 주고 싶은 마음이다.
아버지 학교 스텝으로 봉사 하면서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는 많은 폭력이
존재 하구나 했는데 딸이 엄마를 폭행하고 폭언하는 경우는
처음으로 접하게 되는 것 같다.
마음이 많이 아프다.
가족이라는 단어보다 더 아름다운 단어도 없을 듯한데
가족이라는 단어 속에는 많은 상처가 있는 듯만 하다.
우리네 인생 서로 사랑하며 살아도 부족할 시간인데
왜 서로 생체기 내며 사는 것인지...
내 부모 내 아내 내 자식에게 사랑을 줄 수 없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는 사랑을 줄 수 있을 것이며 세상 살면서 오늘이 행복 하다고
말할 수는 있겠는가 한다.
내가 가진 것 소중하지 않다면 남의 것이라고 소중하겠는가??
그 딸아이가 빨리 자라서 엄마에게 했던 행동들을 후회 할 날들이
머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 그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몸이 불편한 엄마인데...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 가족의 행복을 빌어주고 싶다.
높은 하늘이 왠지 흐릿하게 보이는 듯한 오후다.
오늘도 황사가 왔나....